'경복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1.08 참고] 숙종임금, 인현왕후를 맞이하다
Day×3/Tip2008. 11. 8. 09:22
2008년 궁중의례재현 | 숙종, 인현왕후 가례의(嘉禮儀)
The Royal Marriage between King Sukjong and Queen Inhyeon



재현과 의미

조선시대 국왕의 혼인을 비롯해 왕실혼례를 '가례(嘉禮)'라고 불렀다.
이번에 재현되는 가례는 1681년(숙종7)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와 계비 인현왕후의 왕실혼례이다.

1680년(숙종6)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가 승하하자, 왕실은 국모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계비를 맞을 준비를 하였다. 1681년(숙종7) 1월 전국에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후보명단인 처자단자를 거둬들였다. 3월에는 초간, 재간, 삼간의 절차인 삼간택을 거쳐 병조판서 민유중의 딸인 여흥민씨(당시15세)를 왕비로 정하고, 별궁에 나가 왕실의 법도와 가례를 익히게 하였다. 이어 3차례의 가례 예행연습인 습의를 거친 후, 4월 13일 부터 5월 13일까지 공식적인 가례를 행하였다.

가례는 납채(혼은을 구하는 의식), 납징(예물을 보내는 의식), 고기(국혼일을 알리는 의식), 책비(왕비를 책봉하는 의식), 친영(왕비를 맞이하는 의식), 동뢰연(술잔을 나누는 의식)의 차례로 6례(六禮)룰 거행하였다. 가례를 마친 후에는 새 왕비가 왕대비(명성왕후, 현종의 비)와 대왕대비(장열왕후, 인조의 비)께 인사를 올리는 조현례, 백관의 하례를 받는 진하의례를 하였다. 이로써 약 5개월에 걸친 가례의식이 모두 끝났다.

숙종, 인현왕후의 가례의식에서 주목되는 절차는 친영이다.
국왕이 별궁에나가 왕비를 맞아 궁궐로 돌아오는 이 제도는 숙종조에 비로소 확립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1696년(숙종21)에는 왕비가 종묘에 고하는 묘현례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이처럼 숙종조의 가례의식은 「국조오례의」(1474) 이래 양란 이후 변화된 의식을 새롭게 정비한 것으로서, 후일「국조속오례의」(1744)에 명문화되어 조선후기 국가의례의 전범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또한 조선의 왕은 세자 때 혼인하기 때문에 왕이 된 후에 혼인을 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숙종, 인현왕후의 가례를 재현하게 된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당시 가례는 창덕궁 별궁(어의궁, 현재 종로구 효제동)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본 행사는 현실 여건을 감안하여 경복궁 근정전에서 6례 가운데 책비, 친영, 동뢰연을 중심으로 재현하였다.

1681년 가례를 기록한 의궤와 실록, 2004년 숙종, 인현왕후 가례의 연구집 등을 토대로 의례절차는 물론이고 복식, 의물, 의장 등을 새로이 재현하는 숙종, 인현왕후 가례의 재현행사는 조선 중,후기 왕실의 혼례문화를 복원하는 계기로 준비되었다.


숙종 · 인현왕후 가례의식 진행절차

1681년 거행된 숙종, 인현후의 가례는 왕실 가례절차에 따라 육례 [납채(納采) → 납징(納徵) → 고기(告期) → 책비(冊妃) → 친영(親迎) → 동뢰(同牢)로 구성되었는데 이번 재현행사에서는 책비의, 친영의일부, 동뢰의를 재현한다.

책비의 | 왕비를 책봉하고 왕비가 책명을 받는 의식

초      엄 - 시위군사, 노부의장 입장
             - 별궁에 싣고 갈 요여 및 채여, 고취 등 의례용품 진열

이      엄 - 협률랑이 전악과 악공을 인도하여 입장
             - 예조정랑이 교명함, 책함, 보수 및 명복함을 안에 놓음

삼      엄 - 집사관 입장에 이어 인의의 인도로 종친, 문무백관, 사자가 자리에 나감
             - 국왕입전 승좌
             - 좌통례의 인도로 국왕이 여를 타고 근정전으로 들어와 어좌에 오름

국궁사배 - 종친 및 문무백관이 국왕께 사배를 올림

전      교 - 전교관이 어좌 앞으로 나가 부복후 전교를 아룀

책      비 - 전교관이 교명함을 들어 정사에게 주면 정사는 안에 올려놓음
 
<교명문의 일부>
아 ! 그대 민씨(閔氏)는 시례(詩禮)를 익힌 명문(名門) 출신으로
선상(善祥)이 대대로 이어져 왔으니,
매우 유한(
閑)하고 정정(貞靜)하여 아름다운 성명(聲名)이 있었다.
공손하고 온순하며 우아하게 드러난 유칙(柔則)은
진실로 애타게 구하던 바에 부응하므로,
위적(褘翟)의 존귀(尊貴)함에 합당하다.
이제 정사(
使) 영의정 김수항과 부사(副使) 병조 판서 이숙을 보내여
길일(吉日)을 가려서 의례(儀禮)를 갖추게 하고, 금보(金寶)와 옥책(玉冊)을 주어
그대를 책봉(冊封)하여 왕비(王妃)로 삼는다.


             - 전교관이 옥책함을 들어 정사에게 전하면 정사는 안에 올려놓는다.
             - 전교관이 보수를 들어 정사에게 전하면 정사는 안에 올려놓는다.
             - 정사가 교명함,옥책함,보수함,명복함을 별궁으로 싣고 갈 요여에 안치한다.
             - 사자가 교명함 등을 실은 요여를 앞세우고 의장 및 왕비 연과 함께 별궁으
                로 출발한다.

예      필 - 좌통례가 예필(모든 예가 끝남)을 아뢰고 구고앙이 여를 타고 내젼으로 돌
                아간다.


친영의 | 왕비를 맞아들이기 위한 전안례

             - 국왕영접
             - 국왕 별궁 입궁 | 대차에 대기, 종친가 문무백관이 입궁하여 자리한다.
             - 국왕 동벽단에 오름 | 대차에서 나와 동벽단에 올라 서쪽을 향한다.
             - 국왕, 왕비 북벽단에 오름 | 주인은 국왕의 뒤에 주모(主母)는 왕비의 뒤에
                                                     자리한다.
             - 전안례를 행한 후 문무백관, 종친의 국궁사배


동뢰의 | 국왕과 왕지가 한자이에서 부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술을마시는 의식

             - 국왕과 왕비가 자리하면 그 앞에 찬안을 진설하고 술을 따라 올린다.
             - 국왕과 왕비가 잔을 받고 나면 탕을 올리고,
             - 재차 잔을 올린후 근배(근배)를 사용하여 입가심 하도록 예를 올린다.
             - 의식이 끝나면 국왕과 왕비가 퇴장한다.




숙종 · 인현왕후 가례의 복식

국 왕 |


면    복 - 면복(冕服)이란 규(圭), 면(冕), 의(衣), 상(裳), 중단(中單), 패(佩), 수(綬),
             방심곡령(方心曲領), 폐슬(蔽膝), 대대(大帶), 말(襪), 석(舃) 등이 일습을 이
             뤄 왕, 왕세자, 왕세손의 신분에서 착용하는 최고의 복식이다. 숙종, 인현후
             가례의에서는 육례에따라 납채, 고기, 친영, 동뢰의시에 면류관에 면복을 착
             용하였다.


강 사 포- 왕의 조복에 해당하는 원유관과 강사포는 삭망, 조강, 진표, 조현에 착용하였
             다. 숙종조 인현후 가례에는 숙종이 납징, 책비시 원유관에 강사포를 입었다.


왕 비 |

적    의 - 적의는 국혼 시 이외에도 조하의, 궁주연회인 진영과 길례인 종묘의에서는
              제복으로, 흉례시에는 대렴의대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숙종 · 인현왕후 가례의 주요의물

왕비를 책봉하는 의례에서 왕비에게 내려진 물품은 교명, 옥책, 금보, 명복의 4가지였다. 이들은 왕이 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왕비의 지위를 상징하는 존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보자기로 겹겹이 싸고 함이나 궤에 담겨진 상태로 요여에 실렸다. 또한 요여에서 꺼내어 상 위에 올려놓을 때에도 상 위에 천을 덮는 것이 궁중의 법도였다.

요여(輿) - 왕비책봉을 상징하는 교명, 옥책, 금보, 명복을 싣는 가마

교명() - 왕비, 왕세자 등을 책봉할 때 왕이 내리는 글

옥책() - 왕비를 책봉할 때 내리는 교서를 옥조각을 엮어 만든 책

금보() - 왕실의 도장을 어보라 하는데, 간단한 책봉명으로부터 시호, 존호, 묘호,
                  휘호들을 각각 또는 섞어서 새겼다.


명복() - 명복은 왕비에게 내려진 법복으로 적의 일습을 의미한다. 왕비 책봉을 하
                  는 의식 때 왕비에게 명복을 보내면 왕비는 사가에서 책봉을 받는 의식때
                  이를 입었다.


요여(좌측), 의소세손책봉교명(우측상단),
가례도감의궤 교명식그림(우측중단),
금보(우측하단), 옥책과죽책(우측하단)


궁 중 정 재

본래 가례에서는 음악과 무용을 할 수 없었으나 관람객을 위해 궁중정재(궁중의 음악과 무용)를 공연함

포구락 - 포구락은 당악정재의 하나로, 무용수들이 좌우를 편을 갈라 춤을 추다가 채구
             를 포구문 위에 뚫린 풍류안에 던지는 놀이형식의 춤


무  고 - 무고라는 북을 놓고 북채를 들고 북을 어르며 추는 궁중무용

태평무 - 왕과 왕비, 그리고 태평성대를 축원하기 위하여 추는 춤


출처 : 한국 문화재보호재단 www. chf.or.kr
Posted by Mayanne